제주여성가족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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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4.3평화재단]현혜순 원장[4.3과평화-Vol 24 2016.7]
최고관리자 2016-08-16 1429
"4.3 트라우마 치유의 방향과 대안" 요즘 우리 사회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사건들이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테러 수준의 폭력이 난무하고 살인, 아동 학대, 성폭력,가정폭력, 유명연예인들의 추문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혼돈과 분노, 혐오의 사건 등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 전 세계는 오래 전부터 자연 재해뿐만 아니라, 대량 학살, 전쟁,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직면하고 있으며 재앙적 사건의 피해자들이 생겨나고 있다.제주사회에서의 4·3사건 역시 역사상 일어나지 말아야 할 최대의 비극적 사건이다. 인명 피해만 3만 명으로 추산되는 너무나 큰 사건이자 국가적 비극임에 틀림없다. 아직도 4·3은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진행 중이라는 주장들이 강하다. 여러 측면이 있겠지만, 특히 68주년이 된 현재, 피해자들의 치유에 대한 지원 체계가 정립되지 않고 있는 점이 아쉽다. 생존자들 대부분이 고령세대로, 정신건강에 취약한 연령대이다. 한 연구(2011년)에 의하면, 제주4·3후유장애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disorder, PTSD)의 유병률이 68.6%로 2006년 광주 5·18 유공자 및 가족의 PTSD 유병률 31.4%보다 2배가 넘는다. 또한 최근의 연구(2015년)에 의하면, 생존 희생자 및 유가족의 PTSD는 65%로 심각한 수준인데, 특히 생존 희생자의 41.8%가 고위험 수준의PTSD를 겪고 있다. 전쟁이나 충격적 사건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 사람들의 삶이 뿌리째 흔들리며, 혼돈, 멍함 상태 등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경험하게 된다.외상이라 함은 천재지변, 테러, 전쟁, 심각한 상해 등 죽음과 관련된 사건에 노출될 때, 두려움과 무 력감, 몸서리쳐지는 공포감으로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외상을 겪은 사람들은 과거가 현재 속으로 파고드는 끊임없는 침습증상이 일어나는데, 이 증상은 외상경험으로 인한 심리적 증상이나 정신과적 장애를 겪는 가장 주요한 문제이다. 4·3은 생존자들에게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억울하게 당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 충격은 생존자의 삶을 분노와 우울로 잠식해 버리고, 좌절, 무력감, 피해의식, 피해망상, 환청 등으로 정상적 삶을 영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4·3 때 살아남은 90대 할머니는 스트레스로 목에 주먹만한 혹이 생겼고, 어떤 할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에 대한 원통함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미어져 심장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당시 12세였던 소년은 집이 불타던 모습이 여전히 떠올라 아직도 붉은 벽돌집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다고 하고, 밤에 자주 가위에 눌리고 악몽을 꾸거나 피해의식 등에 시달린다는 증언 등이 보고 되었다. 이와 같이 외상을 겪은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기억 플레시백(flash back), 즉 악몽에 시달리거나 외상 당시 경험했던 강렬한 감정과 끊임없이 싸우게 된다. 또한 외상 경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에 학습했던 회피, 멍함, 둔감화 등의 자기 보호적 방어를 계속해서 사용한다. 이와 같은 침습적이고 회피적인 증상의 결합이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핵심이다. 또한 외상 경험은 냉소, 원한, 불신, 소외감, 미움, 복수심,사기 저하, 신념의 포기, 희망 상실 등의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한다. 외상을 극복한다는 것은 과거를 현재와 분리시키고, 외상 때문에 생긴 자기 보호적 방어를 내려놓고 그 고통스러운 감정을 직면하고 조절하는 것이다. 4·3피해자들은 아직도 분노와 원한의 응어리가 가슴에 맺혀있는 것 같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그러나 4·3생존자들은 60여 년 간 자신들이 겪은 것들에 대해 당당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말하지 못하고 침묵과 회피로 살아왔다. 자기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압도감, 무력감, 공포와 두려움 등을 혼자 외롭게 싸워가며 이겨내 왔던 세월이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생존자들을 외롭게 방치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같이 한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하며, 생존자의 남은 인생과 가족들이 치유를 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제주사회가 같이 한다는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전국 대부분의 광역 지자체에는 광역형정신건강증진센터가 설립되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5년에 제주대학 병원에 광역형정신건강증진센터를 설치하였다. 도내 정신보건 시스템 구축,정신건강증진사업, 자살 예방 위기관리사업, 재난대응 및 심리지원 사업 등 도내 정신건강의 컨트롤 타워로서(control tower)의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이 센터의 주기능은 우울, 불안, 중독 등 우리사회의 정신건강 문제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이로 인한 자살, 범죄 등 사회적 비용이 증가됨에 따라 국민정신건강 문제의 사전 예방과 조기 관리에 중점을 두어 정신건강 문제의 조기 발견, 신속한 회복,원래 삶 복귀 등 전사회적 역량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센터의 기능 중 하나가 재난 대응 및 심리지원사업으로 트라우마 및 재난사고에 대비하여 심리지원 및 서비스 연계조정으로 통합적인 대응관리를 구축하는 것이다. 제주4·3희생자 및 유가족 정신건강실태조사,PTSD 고위험군 심리치유 지원, 4·3트라우마 관련 피해자에 대한 치유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PTSD 대응체계 구축 및 인적자원 개발, 트라우마 실태 조사 및 사례관리, 심리상담 프로그램 운영 및 사례관리 등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4·3생존자 치유는 통합적 시스템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단일한 의료적 시스템이기 보다는 의료, 심리, 사회복지적 접근의 친사회적인 다양한 접근이 용이한 독립된 공동체 복합 시설 트라우마센터 건립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 것이다. 물리적 공간의 접근 용이성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곳, 그리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과 상근 전문가 배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고 수용 받고 공감 받을 수 있는 곳 등이 접근 용이성에 포함되어야 한다. 트라우마센터 건립은 4·3평화재단이 앞장서 독립적인 상설기구화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도민 참여 운동을 전개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4·3생존자 및 가족에게 적합한 치유프로그램 매뉴얼 개발과 운영, 인권 의식 향상을 위한 시민 대상 프로그램 기획 등 단계별 기본계획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이로써 제주사회의 평화, 인권, 그리고 치유를 통한 도민사회의 상생과 화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들이 마련될 것이다.